시라쿠사 (Siracusa)
카타니아를 떠나 다음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카타나아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고대부터 시칠리아를 대표했던 도시, 시라쿠사(Siracusa)가 나옵니다. 시라쿠사라는 이름을 아실 분도 있겠지만, 시라쿠사보다 이 도시가 낳은 인물인 '아르케메데스'를 기억하는 분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3.14~~~~~ 으로 나오는 원주율을 처음 발견한 수학자, 목욕탕에서는 넘치는 물을 보고 벌거벗고 뛰쳐나가면서 '유레카'를 외쳤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수학, 과학의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아르키메데스가 바로 이곳 시라쿠사 출신입니다. 지난 편에서 시칠리아 전체가 고대 그리스 시절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특히나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인 bc 8세기부터 bc 3세기까지 번성했다고 합니다. 시라쿠사가 위치한 곳은 해상교역의 요충지여서 발달된 농업과 무역으로 강한 힘을 키워서 아테네와 경쟁 할 정도로 힘이 강한 도시국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인 포에니 전쟁이 터지는데, 이때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게 되고,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아르케메데스가 고안한 신무기. 돌로 던져 배를 공격하는 투석기와 배를 들어 올려 파괴하는 기중기, 그리고 청동거울로 만든 반사판을 이용해 로마군의 배를 태워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는 도시가 바로 시라쿠사입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마지막 편인 '운명의 다이얼'(2023년 개봉)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끝부분에 시간을 거슬러간 인디애나 존스가 시라쿠사 공방전이 벌어지는 시점에 시라쿠사에 도착하게 되고,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락 영화 속의 한 장면이고, 픽션이지만, 시라쿠사란 도시를 더욱 흥미롭게 여행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니 시라쿠사를 가신다면 인디애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보고 가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네요.
이후 시라쿠사는 로마의 속주가 되고, 기원후 9세기에 아랍인들이 시라쿠사를 정복하면서 아랍문명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중세 후반에는 다시 기독교세력이 시라쿠사를 정복하면서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르티기아 섬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섬에 형성되어 있는 도심이 있지만, 시라쿠사의 역사적 중심지는 시칠리아 본섬과 아주 살짝 떨어져 있는 오르티기아 섬(Ortygia Island)입니다. 지금은 짧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이 오르티기아 섬이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식민지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섬안에 고대 그리스 신전, 극장, 그리고 중세 이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등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시라쿠사를 여행한다면 이 오르티기아 섬을 구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희 가족은 오르티기아 섬의 밖, 바닷가 근처의 호텔을 숙소로 예약해두어서 호텔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오르티기아섬을 구경했습니다. 사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회사일에 바빠서 시칠리아에 대해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고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라쿠사가 멋진 장소라는 얘기는 들어서 1박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하루만 있기로 일정을 잡았는데, 웬걸 막상 시라쿠사를 돌아다니면서 시리쿠사를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멋지다는 말 밖에 안 나오더군요. 다리를 건너 오르티기아섬으로 오면 아폴로 신전 유적 있습니다. 이런 신전유적이야 이탈리아 곳곳에 남아 있으니 크게 감동을 못 느끼고 걸어갔는데,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 오르티기아 섬의 중심인 두오모 광장(Piazza Doumo)에 도착하자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카타니아가 회색빛 도시라면 시라쿠사는 눈부신 하얀색의 공간입니다. 모든 건물이 하얀색 혹은 아이보리색 돌을 이용해 건축되어 있습니다. 마치 중세 서양 그림 속의 천국, 혹은 그리스 신화 속 신전 같은 느낌입니다. 이곳에는 시라쿠사 대성당, 산타루치아 알라바디아 성당과 도시의 주요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건축물과 바닥까지 모두 아이보리색의 돌을 사용하여 건축 되어져 있다 보니 모든 건물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통일감이 시라쿠사를 빛의 공간, 순수한 공간, 흰색의 도시로 기억하게 만듭니다. 아이들도 이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듭니다. 해 질 녘에 되자 순식간에 오렌지 빛의 공간으로 변합니다. 사진을 찍는데, 어떤 각도로 찍어도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됩니다. 과거 시라쿠사가 가졌던 경제적 풍요로움과 도시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와이프가 묻습니다. '우리 시라쿠사에서 며칠 있어?'. '시라쿠사에는 1박만 해'... 이렇게 좋은데 왜 1박만 계획했냐고 타박합니다. 저인들 알았겠습니까? 시라쿠사가 이렇게 아름다울지... 정말 시간만 있다면 내일도 이 광장에서 다시 이 장면을 보고 싶습니다.
다시 걸어서 섬의 남쪽 끝까지 걸어봅니다. 섬의 끝에서 보니 하얀색 돌로 만들어진 성벽이 시라쿠사를 길게 감싸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마니아케 성(Castello Maniace)이란 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부터 로마, 중세와 현대까지 시라쿠사를 지켜냈던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성이네요. 그저 잠시 시라쿠사란 공간에 머물렀을 뿐인데, 마치 천 년 전 시라쿠사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역시 여행은 공감력을 높여주나 봅니다.
오르티기아 섬의 서쪽으로 걸어갑니다. 해변 한켠에 수많은 해산물 식당들이 있습니다. 이런 풍경 안에서 저희 가족도 시칠리아 해산물 요리를 먹기로 결정하고 식당을 찾아보지만 빈 테이블 하나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네요. 시라쿠사란 공간은 누구에게도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주는 곳이라서 항상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노을이 저물어 갑니다.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이 여행을 준비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이 싹 하고 지워집니다. 준비를 좀 더 하고, 조금 더 시라쿠사를 공부하고 왔다면 이곳에서 더 머물렀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충분히 좋았습니다.
홀린듯이 걸다 보니 모두 다리고 아프고, 배도 고픕니다. 터들터들 걸어서 오르티기아 섬을 빠져나오는데, 왠지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많아 보이는 식당이 있습니다. 오르티기아 섬은 여행객의 공간, 시라쿠사 시민들은 관광객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이런 곳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예상 적중! 식당 안에는 외국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현지인들이네요. 메뉴판을 보고 몇 가지 음식을 시켜봅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조리가 안된 것처럼 보이는 생선을 먹고 있습니다. 거의 생멸치 같아 보이는데요. 물어보니 이것이 바로 엔초비, 이탈리아식 멸치젓갈이라고 합니다. 잠시 고민을 했는데, 왠지 시라쿠사가 엔초비를 처음 먹기에는 가장 어울릴 장소 같습니다. 지중해 감성폭발한 상태이니깐요. 소금과 올리브유에 푹 담가진 엔초비는 크게 비리지 않습니다. 솔직히 한국인의 입맛에 대단히 맛이 있지는 않습니다. 물컹한 느낌이 강한데, 저는 경북 포항에 살아서 과메기를 즐기는 편이라 식감은 별로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로컬 화이트 와인 한잔에 약간의 비린 맛을 씻어내자 엔초비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되네요.
아래 링크가 저희가 식사를 했던 식당입니다.
https://maps.app.goo.gl/hphg2Nnnporhe6H88
내일 오전에는 시라쿠사를 떠나야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아침 일찍 오르티기아 섬 산책을 한 번 더 하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가족이 예약했던 Hotel Sbarcadero. 침대가 4개 있는 큰 방이 일박에 20만원정도 했습니다. 주차하기도 좋고, 바로 앞에 해수욕장이 있어서 다음 날 오전에는 해수욕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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